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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 대표 작곡가 드뷔시와 라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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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란

인상주의는 프랑스에서 시작된 근대 예술 운동으로 미술, 음악, 문학에까지 영향을 준다. 인상주의 미술은 전통적인 회화 기법과 다르게 색채나 질감 등에 집중하며 대표적인 화가로는 모네, 마네, 피사로, 르누아르, 세잔, 고갱, 고흐 등이 있다. 그리고 인상주의 음악 또한 색채적인 음의 표현, 몽환적인 분위기를 주었고 대표적인 작곡가로는 드뷔시, 라벨 등이 있고 스트라빈스키, 바르톡, 코다이 등도 인상주의를 표현하였다. 인상주의 음악의 특징으로는 전통적인 화성진행보다는 자유로운 화성 진행을 사용하였고 곡의 전개 또한 자유로운 형태로 변화하였다. 또한 기존 음악의 장조나 단조와 같은 조성보다는 교회선법, 5 음음계, 온음음계등을 사용하여 색다른 느낌을 준다. 

 

드뷔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드뷔시는 1862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드뷔시는 7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여 11살에 파리 국립음악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는 12살에 쇼팽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하여 어린시절 천재성을 보이기도 하였다. 드뷔시는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기보다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작곡을 하곤 하여서 학교에서는 그리 좋은 평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드뷔시는 천재성이 있는 작곡가로 로마 대상을 수상하였다. 드뷔시는 1889년 파리 세계박람회에서 자바섬의 전통음악에 영감을 받게 되고 이 영감으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을 작곡하게 된다.(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은 '달빛'이 수록된 모음곡이다.) 1894년 '목신의 오후 전주곡'이 발표되는데 이는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곡으로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독특한 곡이다.  '목신의 오후 전주곡'은 말라르메의 시인 '목신의 오후'에 영감을 받아 작곡하게 되었다. 이 곡은 자유로운 형식으로 10개의 변주로 이루어져있다. 플루트의 몽환적인 1 주제의 시작으로 오보에, 클라리넷, 하프가 이를 이어받고 현악기가 2 주제를 연주한 후 중분에 들어 클라이맥스를 가지며 또다시 목관이 선율로 나오고 다시 몽환적인 분위기로 되돌아온다. 마지막으로 하프와 호른으로 끝을 맺는다. 드뷔시는 그 이후에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주는 것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색채를 음악에 도입하려 노력했고 그의 대표작인 바다(교향시)를 작곡하게 된다. 드뷔시는 자신이 피아니스트였기에 많은 피아노 곡들을 남겼고 마지막에는 피아노 연습곡집, 바이올린 소나타 등을 남기기도 하였다. 드뷔시는 인상주의 음악의 창시자이며 완성자로 불리기도 한다.

 

라벨

라벨은 1875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라벨은 7살때부터 피아노 교육을 받기 시작했고 12살에 화성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14살 때 파리 국립음악원에서 정규 음악공부를 시작하였다. 라벨은 1901년 로마 대상에서 2등을 수상하였고 그 이후에도 계속 1등에 도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라벨은 로마수상에 계속 응모하면서도 물의 희롱, 세헤라자드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1908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잠시 작곡활동을 멈추기도 하였으나 다시 작곡을 이어나갔는데 이후에는 음악스타일이 조금 더 예민하고 명확한 스타일로 바뀌어 일종의 신고전주의와 같은 스타일로 변화하였다. 그는 1914년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군에 입대하게 되고 1917년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이 즈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이 시기 이후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전우들을 위한 곡인 '쿠프랭의 무덤'을 작곡하였다. 이 곡은 전우들에게 헌정되었는데 쿠프랭의 무덤은 추도음악이지만 첫곡 프렐류드는 행복한 느낌, 두 번째 포를란은 활기찬 느낌, 우아한 느낌의 미뉴에트, 기쁨의 춤을 표현한 리가동 등 밝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후 그는 프랑스에서 작곡가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되며 미국으로 순회공연을 다니기도 하였다. 미국으로 연주여행을 다니는 동안 재즈음악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이후 그의 음악에 영향을 준다. 라벨은 계속해서 작품활동을 이어나갔으나 1932년 자동차사고로 머리를 다치게 되고 뇌질환으로 인해 작곡활동이 어려워졌다. 1937년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